Article 22. 에펠탑은 왜 철골 구조로 만들었을까?
에펠탑은 철골구조로 만들어진 건축물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건축물은 석조 건축물인거와 비교하면 차이가 있다.
그러면 에펠탑은 왜 이런 철골 모양으로 만들어졌을까?
에펠탑 (Tour Eiffel)
에펠탑은 프랑스 파리 마르스 광장에 위치한 격차형 철골타워이다. 에펠탑은 사실 "구스타프 에펠"을 따서 에펠탑이 되었지만 에펠이 아이디어를 낸 사람은 아니다.
1884년 에펠 회사는 마시프 센트럴에 있는 가라비트 고가교의 대형 철제 아치를 방금 완성하면서회사의 전문성의 탁월함을 강조한 웅장한 업적이 되었다. 그리고 에펠이 건설한 자유의 여신상은 파리에서 거의 완성되어 대서양 반대편으로 운반될 준비가 되고 있었다.
프랑스 혁명 100주년과 프랑스의 산업 강국을 기념하기 위해 1889년에 열릴 예정이었던 만국 박람회에 의미 있는 일이 필요했다. 당시 앵글로색슨 엔지니어들 사이에서는 300m 높이의 탑을 짓는 것이 가능할까라는 소문이 떠돌면서 화강암, 석조 등 다양한 아이디어가 쏟아졌지만 오래가지 못했다.
1884년 5월, 에펠 회사의 에밀 누기에(Emile Nouguier)와 모리스 쾨슐랭(Maurice Koechlin)은 파리에서 열릴 예정인 세계 박람회에 대해 논의하며 "박람회를 더 매력적으로 만들기 위해" 무엇을 할 수 있을지 고민하였다. 에밀 누기에는 철강 건설분야의 베터랑이었고, 모리스 쾨슐랭은 그 보다 더 젋은 엔지니어 였다.
모리스 쾨슐랭은 에펠이 건설한 금속 고가교에 영감을 받아 "금속으로 만든 매우 높은 탑"이라는 아이디어를 생각하고, 1884년 6월 6일, 모리스 쾨슐랭은 자신의 집에 300미터 높이의 금속 탑을 대략적으로 계산하고 초기 스케치를 그려 "300미터 높이의 철탑"이라는 제목을 붙였다.
당시 스케치를 본 에펠은 관심이 없었지만, 계속적인 연구를 지원하여 쾨슐랭과 누기에는 에펠회사의 공식 건축가 스테판 소베스트르와 협력하여 기존의 스케치를 바꾸었다. 스테판 소베스트는 전체 3층에 1층과 2층은 관람객을 위한 유리방과, 탑의 기단 사이는 커다란 아치 장식을 설치하고, 기단은 석조 받침대, 꼭대기에는 종탑을 세웠다.
에펠은 재설계된 탑을 보고 1884년 9월 "300m 이상의 높이를 가진 금속 지지대와 철탑을 건설할수 있는 새로운 구조"에 대한 에펠, 누기에, 쾨슐랭의 이름으로 특허를 등록하고 2년 후인 1889년 11월에 프로젝트가 공식적으로 채택되면서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맞이하여 파리 만국 박람회를 개최를 기념하기 위해 300m 타워 에펠탑을 건축하게 되었다.
에펠탑은 높이가 324m로 81층 높이의 예술의 도시 파리 도심에 솟아오른 거대한 구조물에 수많은 예술가와 시민들이 착공 부터 도시미관을 훼손한다는 이유로 들고 일어났다.
당시 주변의 석조 건물 양식인데 비해서 철골 구조 건축물은 고풍스럽고 아름다운 도시에 높이 300m 가 되는 철골 구조물은 천박하다고 여겨졌기 때문에 "뼈대만 앙상한 저딴 건물이 파리에 있는것을 참을 수 없다", "예술의 도시인 파리의 미관을 망치는 흉물" 이라는 부정적인 여론속에서 7,300여톤의 연철로 300명의 작업자가 18,038개의 철재와 250여만개의 리벳으로 건설되었다.
에펠탑은 다리를 지탱하기 위해 콘크리트로 기초를 다진 후, 안쪽으로 54도 기울어진 상태로 4개의 다리를 세웠다. 그리고 가운데에 지지대를 세워서 다리 사이를 아치형태로 만들어서 단을 올리고 트러스 구조로 형성하여 힘이 잘 분산되도록 했다. 그리고 높이 올라갈수록 폭이 좁아지게 만들고 가장 꼭대기 층의 폭은 10m의 전파 안테나가 설치하였다.
에펠은 예술가들의 항의에 보란듯이 "과학에 대한 찬사"를 선택하고 에펠탑의 4면에 라부아지에를 비록한 72명의 프랑스 과학자, 엔지니어, 수학자들의 이름을 탑 건축에 금빛으로 새겼으며 이는 땅에서도 읽을 수 있을 만큼 크기이다.
에펠은 프랑스 혁명 100주년을 기념하는 일환으로 자신의 탑을 과학의 진보의 상징으로 삼고 프랑스 혁명의 표현의 하나 였다. 과학자들의 이름을 새겨넣기 위한 조건이 있었다. 프랑스인이며 1789년에서 1889년에 살고 있고, 주어진 공간을 고려하여 첫글자를 제외하고 12글자를 넘지 않는 과학자들로 선정되었다.
에펠은 탑의 엄청난 건설비를 지불하면서 20년간 세울 수 있는 허가와 수익의 독점권을 인정 받았다. 많은 부정적인 여론에도 불그하고 에펠의 예상대로 3년만에 투자비를 뽑았다고 한다.
그 후 1909년에 시에서는 애초부터 탑의 소유권을 파리시에 넘겨진 뒤 철거할 계획이었다. 하지만 이미 파리의 명물로 자리 잡아 철거에 부정적인 여론과 에펠의 설득으로 송신탑으로 활용할 가치를 주장하여 프랑스 육군 고위층의 결정으로 철거되지 않았다.
1910년 1월1일 귀스타브 에펠에게 70년으로 계약이 갱신되면서 영원히 보존되게 되었다. 1918년 라디오 방송을 위해 송신탑으로 사용되고, 1957년 55피트의 텔레비전 송신 안테나가 추가로 설치되며 에펠탑은 결국엔 파리 시는 물론 프랑스 전체의 상징이 되었다.
인체를 모방한 에펠탑
모리스 쾨슐랭의 스승이었던 카를 쿨만(Carl Culmann)은 1849년 28세때 철도 엔지니어로 일을 하다가 회사를 휴직하고 미국과 영국을 여행하면서 다양한 토목구조물을 접하면서 새로운 교통수단인 증기기관차가 수요가 늘어나면서 교량의 중요성이 높아졌다. 쿨만은 여행을 하면서 당시 철도 교량이 "트러스(truss)"는 철체 막대기들을 X 혹은 삼각형 모양으로 조합에 대한 체계적인 분석으로 효과적인 설계법을 개발하였다.
그 업적으로 1855년 취리히 연방 공과대학 개교 하면서 그를 교수로 초빙했다. 쿨만은 더 획기적인 트러스 구조를 고민하고 있던 때 1866년 해부학자인 동료 의대 교수 마이어(Georg Hermann von Meyer)의 연구실에서 마이어가 절단한 인체의 뼈 단면에서 힌트를 얻게 된다. 뼈 구조는 대개 외곽이 치밀하고 중심이 성글다.
이것은 인체에서 가장 강한 힘을 받는 넓적다리를 분석해 보면, 놀랍게도 밀고 당기는 힘이 반복되며 가해하지 하중들은 연약한 뼈의 중심부를 피해 단단한 외곽부로 분산된다.
해면골(Spongy bone)이라 불리는 중심부의 엉성해 보이는 조직이 분산 역할을 하고 있다. 외부와 내부의 강약이 뼈 전체가 튼튼할 필요가 없어 무게도 줄이고 하중도 잘 버틸수 있다는것을 이야기해주고 있다.
쿨만은 이러한 메커니즘을 철제 트러스에 도입한다. 힘을 크게 받는 부위는 외부로 돌려 굵게 만들고, 그 사이를 잇는 내부는 가늘게 만들어 힘을 분산하는 역할을 맡게 했다.
여기에 감명을 받은 제자 쾨클랭(Maurice Koechlin)은 쿨만의 가르침을 인류사에 길이 남을 건축물에 적용하게 된다. 에펠의 회사에 입사한 쾨클랭의 첫 도전은 미국 독립 100주년을 기념해 뉴욕 항구에 들어서게 될 자유의 여신상이었다.
높이 46m의 거대한 동상(銅像)을 내부까지 구리로 채울 수는 없다. 자유의 여신상이 왼손에 든 미국독립선언서만 해도 길이 7.2m, 너비 4.1m, 두께 0.6m인데 세제곱미터당 9t 정도인 구리의 비중을 생각하면 독립선언서 무게만 무려 159t 이다.
자유의 여신상 전체는 감당하기 힘들 정도로 무거워질 것이다. 그래서 일반적인 청동 주조상은 내부를 비워 주조하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의 여신상은 훨씬 과감한 방식이 필요했다. 불과 2.4㎜ 두께의 구리판을 망치로 다듬어가며 외곽을 만들어 전체 구리 무게를 31t으로 줄였다.
그러나 거대한 구조물이 강한 바닷바람에 견딜 수 있도록 튼튼한 내부 뼈대가 필요했다. 쾨슐랭은 여기에 쿨만의 아이디어를 적용한다. 마치 인체와 같이, 얇은 구리로 만들어진 피부 내부에 철재로 만든 125t 무게의 강력한 골격이 결합했다. 구리 피부와 철제 골격의 합은 불과 156t으로, 구리로 가득 채울 경우의 독립선언서보다 가벼웠다. 상식을 뛰어넘는 혁신으로 인정을 받기 시작했다.
이렇게 1886년 자유의 여신상이 성공하자, 확신에 찬 에펠은 쿨만과 쾨슐랭의 아이디어를 자신의 야심작 에펠탑으로 확장하게 된다.
1889년 프랑스 혁명 100주년 기념으로 추진된 에펠탑은 한 변의 길이가 125m인 정사각형 위에 높이 324m로 세워진 거대한 건축이다. 응력 궤적 계산을 보여주는 쿨만의 고체 구조물에 대한 자료를 활용하고 "인체 골격의 정역학과 역학(Statics and Mechanics of the Human Skeleton)"에서 인체 대퇴골 내 해면골 구조의 기계적 연관성에 대한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쾨슐랭은 에펠탑의 구조를 설계하고 엔지니어링하는 데 쿨만의 접근 방식을 사용했다.
에펠탑은 가볍고 아름다운 구조와 거대한 구조물의 전형인 반면, 인간의 대퇴골은 체중의 정적 및 동적 효율성을 모두 갖춘 경량 구조물인데 에펠탑이 이를 어떻게 활용했을까?
에펠은 모리스 쾨슐랭의 아이디어를 참고하여 인간의 대퇴골 과두가 수직선과 이루는 각도를 반영하여 에펠탑의 기초 구조물을 수직선과 30° 각도, 즉 수평선과 60° 각도로 세웠다.
에펠탑 기단의 두 경사 기둥 내부의 아치는 포물선 구조이고 대퇴골 과두 사이의 아치도 포물선이다. 이러한 곱셈으로 인해 포물선 아치는 대퇴골 내부의 포물선 아치보다 훨씬 더 평평한 형태로 설계되었다.
탑의 경사진 기둥 사이에 아치를 설치하여 기둥들을 연결하고 탑의 무게를 네 다리에 분산시키는 방안을 고려하였고 아치를 포함한 관절돌기가 상체의 무게를 지탱한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인체 내부의 대퇴골 관절돌기에 설치된 체중 지지 장치를 기반으로 에펠탑의 기단이 세워지게 되었다.
에펠탑 기단 위의 탑은 곡선을 따라 세워져 있는데, 이 곡률은 곡선에 대한 접선이 수직선과 15°를 유지하도록 고려되었다. 이 각도는 남녀의 대퇴사두근 각도의 평균값과 같다. 또한 탑의 곡률은 기단 구조 위에 15°의 각도로 포물선 곡선으로 유지되어 있다.
해면골은 가볍고 다공성이 있어 구조적 지지력을 제공하고 관절과 사지의 움직임을 촉진하여 기계적 응력을 흡수한다. 다시 말해 해면골은 장골의 안쪽에 위치하며 대부분의 불규칙한 뼈를 채워서 본질적으로 충격 흡수 장치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인체는 걷기, 줄넘기, 달리기, 점프와 같은 움직임을 통해 골격계를 통해 미시한 충격파를 전달하고 흡수 하면서 뼈가 부러지는것을 방지하고 섬세한 뼈대의 손상을 방지하게 되는것이다.
이러한 해면골의 구조는 에펠탑에도 반영되었다.
트러스 구조(Truss structure)
에펠탑은 뼈의 해면골을 모방하여 트러스구조를 이용하였다. 트러스 구조는 흔히 삼각형 형태의 조합으로 만드는데 사각형은 외부에서 힘을 받으면 쉽게 일그러지는것에 비해 삼각형은 어느부분에서 힘을 가해도 안정적이기 때문이다.
쾨슐랭은 당시 철탑에 대한 비판과 안정성의 논란을 해결하기 위해 고심 끝에 철골 부재를 연결하여 작은 삼각형을 만들고, 이것을 다시 연결하여 큰 삼각형을 만드는 대대적인 트러스 격자 구조를 했다. 이러한 트러스 격자 구조로 만들어진 에펠탑은 구조설계 측면에서 최고의 걸작품으로 인정받고 있다.
또한 에펠탑은 각각의 트러스 구조가 동위각과 엇각이 같은 평행선을 이루고 있어 안정정으로 엄청난 무게를 지탱할수 있다.
에펠탑은 인체를 모방한 쾨슐랭의 설계로 사용된 철재의 전체 무게는 7700t 으로 한 변의 길이가 10m인 정육면체를 채운 철의 무게인 7800t보다 가볍다. 이는 거대한 에펠탑을 녹이면 이 정육면체에 모두 들어가고도 남는다는 것이다.
심지어 에펠탑이 들어갈 수 있는 커다란 원통을 생각하면, 그 공간이 차지하는 ‘공기’의 무게는 9540t 으로 에펠탑보다 무겁다. 이처럼 에펠탑이 큰 규모에 비해 무게를 대폭 줄일 수 있었던 것은 인체의 뼈 구조를 참고했기 때문이다. 더구나 이런 대형 구조물은 바람의 영향을 크게 받지만, 구리 피부를 가진 자유의 여신상과 달리 구멍이 숭숭 뚫린 에펠탑은 훨씬 안전하다.
결국 시대를 앞서갔던 이 철골 구조물은 세월이 지나며 서서히 진가를 인정받았고, 이제는 파리에서 가장 예술적인 랜드마크가 되었다. 이처럼 인류 건축 역사상 가장 위대한 작품은 인간과 자연에 대한 깊은 통찰에서 시작되었다.
에펠탑 래플리카
에펠탑 이후 높은 탑을 세우기 위해서는 바람의 저항과 무게를 견딜수 있는 곡선과 인체를 모방한 철골구조가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프랑스와 오랜 라이벌 영국에서는 에펠탑 성공을 보고 1894년에 블랙풀 타워를 만들었다. 높이 158m 로 에펠탑의 절반 크기로 에펠탑 짝둥이라는 느낌으로 잘 알려지지 않았다고 한다.
도쿄타워는 에펠탑을 모방해서 만들었으나 에펠탑 보다 3m 더 높은 333m 높이이고 외형치장을 줄여서 철골 사용량을 줄였다. 마카오에도 5성급 호텔인 더 파리지앵 마카오 호텔에 에펠탑 절반 크기로 세워져 있다.
중국에도 있단다. 2007년 항저우 인근 텐두청에 주변 거리까지 비슷하게 만든 에펠탑을 조성하였다. 라스베거스에는 1999년에 세워진 에펠탑 절반(165m) 높이로 패리스 호텔에 세워져 있다. 그리고 파키스탄 라호르 인근에도 있다는 사실...
여기 말고도 우리는 많은 에펠탑 래플리카를 보고 있다. 어릴때는 송전탑을 보고 에펠탑을 봤다고 생각한 적이 있다. 송전탑도 바람과 무게를 해결하기 위해 철골구조로 지어진 것이다.
Reference
1. https://www.toureiffel.paris/
2. International Journal of Physics and Mathematical Sciences ISSN: 2277-2111 (Online) An Open Access, Online International Journal Available at http://www.cibtech.org/jpms.htm 2017 Vol. 7 (2) April-June, pp. 1-21/Adhikari